Interview

근대적 자아로서의 개인

건축가 최욱 ①

건축가 최욱을 만나다

올해 오픈하우스서울 2017에서는 스페셜 프로그램으로 건축가의 대표작을 모두 돌아볼 수 있는 건축가 특집을 진행한다. 건축가의 연작을 모아 소개하고 이를 직접 방문해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자리다.

올해의 특집은 건축가 최욱. 현대카드 HQ3, 현대카드 쿠킹 라이브러리, 디자인 라이브러리, 1964빌딩, 백남준 기념관,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 등 총 8개의 대표작 오픈하우스와 함께 건축가 최욱의 프로젝트 오픈하우스 중 4개를 참가한 분들에 한해 신청을 받은 후 초청자를 선정하는 부암동 주택 오픈하우스가 이벤트로 진행된다.

한국 건축의 기본적인 특성으로 기단을 주목하고 이를 통해 건축의 내외부를 구축하며, 1소점 투시도를 벗어나 공간의 편안함, 빛에 대한 컨트롤, 외부와의 소통을 공간에 담아내려는 작업을 펼쳐내고 있는 건축가 최욱의 작업. 

본 인터뷰는 최욱이 말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에서 건축가로서 갖는 태도와 작업에 대한 이야기, 일상성에 주목하고 깨어있는 개인이고자 한 건축가의 생각을 나누고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진행되었다. OHS

 

합리주의적 태도와 비평으로서의 역사

사무실 건물의 외관은 평범하지만 건물의 앞뒤가 모두 녹음을 마주하고 있어요. 이곳은 어떻게 발견하셨나요.

2000년도에 독립해서 처음 단독으로 차린 사무실은 한옥이에요. 그러다가 광화문 사무실로 들어갔는데 최대 수용 인원이 15명이라 작았어요. 사무실을 본격적으로 찾는데, 세 군데를 찍었어요. 신문로 경희궁터 쪽, 유엔빌리지 근처 단독주택, 그리고 연세대 동문 근처. 공통의 컨텍스트는 ‘도심인데 자연 경관이 있는 곳’이에요.

특히 연세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사이는 구글 지도를 보고 확신을 했어요. 된다.(웃음) 그래서 직원을 풀어서 여러 곳을 알아봤죠. 그렇게 발견했는데 처음에 두 층으로 시작했다가 임대공간이 날 때마다 확장했어요.

 

건물의 앞뒤 창문으로 녹음이 둘려싸여 있어서 전혀 서울 한복판 같지 않아요. 장소를 보는 안목이 다르다보니 건축가들은 좋은 장소를 잘 찾아내시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자연이죠. 학교 부지에 언덕배기이니까. 부동산은 안 맞는데, 아지트는 잘 찾아요.(웃음)  

 

건축을 전공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렸을 적에 집에서 주로 생활을 했어요. 초등학교 가기 전까지. 그러다보니 편안한 의자가 주는 편안함이 정말 좋았어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장난감도 만들어보고, 나무도 만져보고. 초등학교 들어가서 발견한 단어가 목수였어요. 건축가라는 단어는 몰랐고. 처음 쓴 장래 희망이 목수였죠. 시간이 지나면서 건축가라는 단어, 또 무대미술이나 자동차 디자이너도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건축가도 굉장히 매력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대학 진학 때 내가 가려는 과가 정말 건축과가 맞나하는 의문에 많이 갈등했어요. 건축은 사고와 철학이 같이 갈 수 있는 학문인 것 같았는데, 당시 한국의 건축 교육이 과연 그럴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고등학교 때 공부를 별로 안했거든요. 그런데 두 권의 책을 읽었어요. 지오 폰티(Gio Ponti)의 『건축예찬』과 S.E 라스무센(Steen Eiler Rasmussen)의 『건축 예술의 체득(Experiencing Architecture)』. 내용을 완벽히 숙지하지는 못했지만 둘 다 건축이 한국에서 흔히 말하는 엔지니어링이나 만드는 직업이 아니라, 느끼고 사고하고 판단하는 직업인 것 같았어요. 특히 라스무센은 ‘리듬, 소리로서의 건축’에 대한 이야기했거든. 그래서 건축과 중에서도 홍대를 선택해서 들어갔는데, 바로 후회했지. 다시 미대를 가야하나 고민을 많이 했어요.

 

미대를 가신다면 순수미술을 생각하신 건가요?

그보다 영화나 무대미술, 자동차 디자인을 했을 것 같아요. 이탈리아에서는 미대로 입학했다가 다시 건축으로 옮긴 거예요. 미대로 가고 싶다는 생각은 오랫동안 했었죠. 이탈리아에는 영화 찍으러 갔었거든. 영화감독이 되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그런데 군대가 미필이었어요. 학교를 빨리 졸업해야 군대를 안 가는데 이탈리아는 영화학교가 없더라고. 영화과는 아예 없어요. 이탈리아에서 학교는 학문을 하는 곳이고, 영화감독은 학문에 속하지 않는 일종의 개인의 영역이야. 학교에서 배우는 게 아니였어요 지금도 그렇죠.

 

왜 영화감독이 되고 싶으셨어요?

영화감독, 무대미술은 내가 주인공이 안 돼도 되니까요. 굉장히 내성적이고 소극적이었거든. 주변에 사람이 많은 건 좋아했어. 생각하기에 그 학문들은 내가 주인공이 안 돼도 되지만 주변에 사람들은 많아요. 지금 우리 사무실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내가 주인공이 아닌 분위기거든요. 나서지도 않고. 비슷해요.

 

이웃이죠.(웃음)

이웃이지.(웃음) 이웃에 끼어들어서 같이 작업하는 분위기, 그게 내가 편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내가 건축계에서 말을 아낀다고 했지만 그보다는 나서는 것을 굉장히 싫어해요. 지금은 사무실이 있기 때문에 우리 식구들에게 직접이든 간접이든 이야기하는 게 필요하고, 이런 인터뷰를 계기로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게 효율적일 거 같아서 이야기를 하는 거죠.

 

영화에서 건축으로 방향을 바꿨는데, 베니스 건축대학은 같은 시기 다른 학교와 어떤 점이 달랐나요.

그 시절 베니스대학은 유럽에서 가장 좋은 대학 중 하나였어요. 당시에는 학교가 좋은 줄을 몰랐어요. 사촌형님이 대학에 있었는데, 베니스 건축대학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대학이라고 추천하시더라고. 베니스는 상상도 안 해봤는데. 그 때 내 머릿속에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어요. 1974년도인가, 중2 때 본 스포츠신문에 세계윈드서핑대회에서 1등한 베니스 미대 여학생 인터뷰가 실렸어요. 학교가 어디 있냐고 물어봤더니 예술학교가 섬에 있어서 배를 타고 들어간대. 나에게 이 장면은 환상이었어요. 사촌형이 베니스에 알도 로시가 있다고는 했지만, 어렸을 적에 느꼈던 그 환상이 가장 먼저 떠올랐어요. 당장 간다고 했지.

그 당시에는 소련, 중국도 다 건재했을 때인데, 막상 가보니 이 학교가 유럽 내에서 대표적인 좌파학교였어요. 당시엔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좌파였고, 건축가들 중에도 좌파가 많았어요. 그래서 만프레도 타푸리, 알도 로시, 비토리오 그레고티 이런 사람들이 포진해 있었어요. 그때는 이탈리아 건축계 이론이 상당히 강했거든요. 그 학교를 중심으로 피터 아이젠만, 제임스 스털링, 마리오 보타, 알바로 시자와 같은 건축가가 학교에 와있었죠. 그런 면에서 개인적으로 혜택을 받았죠. 황금기가 살짝 지날 무렵에 그 학교에 있었으니까.

 

건축을 설계하는 방식을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이론적인 토대를 흡수한 건가요.

당시에는 베니스 건축대학이 건축 설계 학교로도 유명했어요. 타푸리 때문에 이론이 강했고, 희한하게도 철학의 중심지가 철학대학이 아니라 베니스 건축대학이었어요. 타푸리를 중심으로 인문학자들을 많이 모시고 왔어요. 포스트모던이나 이론을 제공하는 프랑코 렐라, 마시모 카차리, 스콜라리 같은 사람들이 학교에 포진해 있어서 역사, 미학, 건축 수업이 어마어마했어요. 그리고 베니스 건축대학은 유럽에서 가장 먼저 도시 계획과가 생긴 곳이에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있었고 그 분위기를 경험한거죠.

그런데 이 사람들이 소위 말해서 합리주의자인거예요. 논문 하나 복사하는데 4개월이 걸렸어요. 논문은 출판되기 전의 학문적 업적이잖아요. 아직 출판되지 않았기 때문에, 원저자가 허락하지 않으면 복사를 못하는 거예요. 어떤 논문 중 몇 페이지를 복사해야 하는데, 선생님께 물어봤더니 원저자를 찾으래. 졸업한 지 10년이 지난 사람을 찾을 수가 없잖아요. 당시에는 인터넷도 없는데. 그래서 4개월 만에 그 사람을 찾아서 3페이지를 복사했어요. 그런 게 합리주의자였죠. 그렇게 엄격한 사람들이 만들어 내려고 했던 태도를 배운 것 같아요.

 

원칙이 몸에 베이셨겠네요.

합리주의자의 태도를 봤죠. 내가 영향을 받은 건 그런 태도 같아요. 알도 로시같은 사람들 때문에 신합리주의자들이 많은 학교라고 했는데, 막상 신합리주의자들 중 이론이나 역사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들은 한 명도 없었어요, 이 사람들은 현실을 이야기 했어요. 대신 엄격한 태도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에 그리신 그림을 본 적이 있어요. 포스트모던 교육이 한창이었던 시대에, 보자르 시대에도 그리기 힘든 클래식한 정교한 그림을 그리셨더라구요. 역사와 디자인을 같이 배우신 거죠?

그렇죠. 역사도 타푸리 영향으로 ‘비평으로서의 역사’였던 것 같아요. 우리 때에는 찰스 젠크스가 유명했었거든요. 젠크스 같으면 연대기순으로 배우잖아요. 그런데 타푸리식의 서술은 연대가 없어요. 문제의식이 있죠. 문제의식이 있다는 것은 도시가 이런 문제가 있는데, 도시를 어떤 식으로 바라볼 것인가.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미국 도시를 봐야 하고, 중국 도시를 봐야 하고, 유럽 도시를 봐야 하는 방식으로 새롭게 비평적인 의식에서 분석이 되는 거죠. 연대기순으로 배운 적은 없다구요. 다른 교육을 받았던 것 같아요. 굉장히 비평적인 관점에서 역사 해석의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아요. 카차리같은 사람들은 철학자이기도 하고 미학자잖아요. 이탈리아에서 개념을 추구하는데 어원인 라틴어나 그리스어가 중국어처럼 다의적으로 해석이 돼요. 그 어원을 새롭게 해석하면 현대의 언어까지 새롭게 해석되는 거예요. 예를 들어 미(beauty)의 정의도 과거로부터 돌아가서 라틴어, 그리스어부터 시작해서, 칸트의 정의가 있고 거기서부터 현대의 미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라는 식으로 전개돼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수업은 다 없어졌죠. 현대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아요. OHS

진행 임진영, 최춘웅
사진 정유진 
 

인터뷰 ②로 이어지며, 인터뷰는 홍보기간 중 한편씩 업데이트됩니다. 

+ 참고문헌: 와이드건축 통권 55호 건축가 최욱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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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 Report ㅁ자집+땅집, 조병수 스페셜테마 02 Suburb of Seoul  건축가 조병수, ㅁ자집+땅집+꺽인 지붕집   날좋은 가을 수곡리 오픈하우스의 현장을 만나보세요. 
OpenHouse 백인제 가옥 서울시 민속문화제 제22호인 백인제가옥은 종로구 북촌(가회동)에 자리하고 있으며 1913년 건립된 근대 한옥으로 지난 2009년 서울시가 백인제(백병원 설립자) 유족으로부터 인수 후 보수공사를 거쳐,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건축 당시의 생활상을 복원 연출한 역사가옥박물관이다. 전통한옥과 다르게 사랑채와 안채가 복도로 연결되어 있고 건축재료로 압록강 흑송, 붉은 벽돌과 유리창을 많이 사용하였으며 안채의 일부가 2층으로 건축된 특징이 있는 일제강점기 대형(2,460㎡) 한옥으로 북촌에서 유일하게 실내까지 관람이 가능한 가옥이다. 북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2,460㎡의 대지 위에 당당한 사랑채를 중심으로 넉넉한 안채와 넓은 정원이 자리하고, 가장 높은 곳에는 아담한 별당채가 들어서 있다. 전통적인 한옥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도 근대적 변화를 수용하여, 건축 규모나 역사적 가치 면에서 윤보선 가옥과 함께 북촌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꼽힌다. 1907년 경성박람회 때 서울에 처음 소개된 압록강 흑송(黑松)을 사용하여 지어진 백인제 가옥은 동시대의 전형적인 상류주택과 구별되는 여러 특징들을 갖고 있다. 사랑채와 안채를 별동으로 구분한 다른 전통한옥들과는 달리 두 공간이 복도로 연결되어 있어, 문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일본식 복도와 다다미방을 두거나 붉은 벽돌과 유리창을 많이 사용한 것은 건축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반영한 것이다. 또한 사랑채의 일부가 2층으로 건축되었는데, 이는 조선시대 전통한옥에서는 보기 힘든 백인제 가옥만의 특징이다. 글 사진 서울시 제공 장소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 7길 16(가회동) 이용시간 09:00~18:00 (입장마감 17:30)  ※ 자유관람시 외부 관람만 가능 휴관일 매주 월요일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개관), 1월 1일 관람인원 안내해설 1회 15명, 자유관람 동시관람객 100명 이용요금 무료 예약 서울시 공공서비스 예약시스템(http://yeyak.seoul.go.kr) 이용 및 현장접수 병행(문의 724-0200, 0232) 백인제 가옥 http://www.museum.seoul.kr/www/guide/vis/BIJHShow/BIJHIntro.jsp?sso=ok
Special 근대적 자아로서의 개인, 건축가 최욱 ① 건축가 최욱을 만나다 올해 오픈하우스서울 2017에서는 스페셜 프로그램으로 건축가의 대표작을 모두 돌아볼 수 있는 건축가 특집을 진행한다. 건축가의 연작을 모아 소개하고 이를 직접 방문해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자리다. 올해의 특집은 건축가 최욱. 현대카드 HQ3, 현대카드 쿠킹 라이브러리, 디자인 라이브러리, 1964빌딩, 백남준 기념관,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 등 총 8개의 대표작 오픈하우스와 함께 건축가 최욱의 프로젝트 오픈하우스 중 4개를 참가한 분들에 한해 신청을 받은 후 초청자를 선정하는 부암동 주택 오픈하우스가 이벤트로 진행된다. 한국 건축의 기본적인 특성으로 기단을 주목하고 이를 통해 건축의 내외부를 구축하며, 1소점 투시도를 벗어나 공간의 편안함, 빛에 대한 컨트롤, 외부와의 소통을 공간에 담아내려는 작업을 펼쳐내고 있는 건축가 최욱의 작업.  본 인터뷰는 최욱이 말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에서 건축가로서 갖는 태도와 작업에 대한 이야기, 일상성에 주목하고 깨어있는 개인이고자 한 건축가의 생각을 나누고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진행되었다. OHS  
PUBLIC CONNECTION with Seoul Architecture Festival 도서출판 갈무리 독립공간 [뿔], 조한준 5시-6시             오픈하우스 6시-7시             건축가 조한준 건축물 설명 및 강연                            주제_도심 속 협소건축이 가지는 의미 아주 작은 땅이다. 도로에 면한 땅의 폭이 6m, 안쪽으로 10m 길이 60m² 남짓의 19평 공간이 주어졌다. “도서출판 갈무리”라는 출판사의 대표이며 작가이자 정치철학자인 예비 건축주는 이 작은 땅에 독립공간을 꿈꾸고 있었고 그 꿈을 이루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건축가를 찾고 있었다. 작은 땅만큼이나 좁은 골목길, 좁은 골목길이기 때문에 더 가까이 인접해 있는 이웃들의 원성, 물을 가득 머금고 있는 연약한 지반 상태, 자재를 적재할 만한 충분한 공간도 없었다. 공사 작업자들에게 이보다 더 한 열악한 작업환경이 있을까 싶었다. 설계를 하는 내내 이 건물이 주변의 밀도 있는 건물들 속에서도 작지만 당당하기를 원했고 무표정한 듯 하지만 강한 표정을 지어주기를 원했고 단순한 듯 하지만 그 단순함이 오히려 세련되 보이기를 원했다. 어느덧 오랜 시간의 흔적을 간직해왔던 작은 골목 끝자락에서 하얀색 [뿔]이 솟아나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현재 이 건물이 들어선 곳 아주 가까운 곳에는 오랫동안 출판사의 사무공간과 소통의 공간으로 사용했던 건물이 있다. 이 곳에는 출판사가 겪어온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고 여전히 그 공간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 건축주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건물주가 바뀌고 상황이 달라져서 오랜 기간 사용해 왔던 공간의 물리적, 경제적 독립을 보장하기 힘들게 되어버렸다. 건축주 역시 홍대 문화를 일군 많은 창작자에게 닥친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하긴 어려웠지만, 건축주는 이 동네를 벗어나고 싶지는 않았고 지금의 현실에 맞서는 방법으로 인근에 사옥을 짓는 일을 선택한 것이다. 건축주가 가지고 있는 예산안에서 구입할 수 있는 토지는 아주 제한적이었고 결국은 인근의 아주 작은 6m x 10m(60㎡) 크기의 땅을 얻을 수가 있었다. 좁은 땅에 자신들이 얼만큼의 공간을 만들고 불편함이 없이 지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과 다소 불안감을 가진 건축주와 달리 나는 골목을 들어서자마자 장소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과 작지만 우뚝 솟은 오브제의 상징성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땅에 진입할 수 있는 도로의 폭은 고작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골목길이었다. 하지만 그 골목길은 진입과 동시에 길게 뻗은 선형의 방향성을 가지는 축이 되었고 그 골목의 막다른 위치가 건물이 지어질 터였다. 자연스럽게 솟아 있어서 물리적인 오브제를 통해 그 방향성을 자연스럽게 어디론가 흘려 보내고자 했다. 자연스럽게 솟아 오른 뿔은 땅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의미를 가지게 하고 싶었다. 건물의 첫 이미지는 ‘덩어리’의 느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장식적인 요소를 최소화 하고 형태 자체를 디자인 요소로 풀어야 했다.마침 건물의 전면이 서향을 마주하고 있어 늦은 오후에 가장 밝은 건물의 표정을 읽을 수가 있다. 결과적으로 나는 골목 끝자락에서 원하는 건물의 표정과 인상을 만들어 낼 수 있었고 작지만 당당한 건물의 이미지를 구현하게 되었고 가까이서는 보는 각도에 따라 건물의 다양한 표정을 의도하여 가늠할 수 없는 건물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고자 하였다. 글 조한준  사진 박영채, 류인근
OPENHOUSE 디사모빌리 본사 및 전시장, 양진석 디사모빌리는 폴리폼, 리네로제 등 외국의 명품 수입 가구를 판매하며 오랜 동안 정상의 자리를 지켜온 가구 회사 이다. 논현동 가구 거리에 자리를 잡은 이후에 처음으로 본사 사옥 및 전시장 용도로 짓게 되었다. 가구 거리의 북측에 위치하면서 남측으로 논현대로를 바라보는 대지다. 북측으로는 고밀도의 주거가 밀집되어있어, 일조권 사선 제한에서 부터 다양한 민원 등으로 인허가부터 시공까지 꽤 긴 시간을 보냈다. 무창, 사선제한 그리고 조형  가구 전시장의 순 기능을 살려서 전면에는 무창 개념의 석재 마감으로 디자인하였다. 가구가 주인공이 되어야할 건물이기에 되도록 건물 자체의 표정보다는 디테일이 잘 정리된 건축으로 계획하였다. 북측은 일조권 사전제한과 민원 등의 사유로, 일체의 조망을 위한 창은 설치할 수 없는 상황에서 충실하게 기능에 맞는 디자인으로 마무리하였다. 사전제한으로 인해서 생기는 계단식 입면의 한계가 분명 있었지만, 재료의 분리와 매스 조합의 다양한 조형 형태로서 최대한 조형의 한계를 보이지 않도록 시도하였다. 사선제한으로 인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테라스 공간을 최대한 쾌적하게 전시장과 연결되도록 설계하였다. 전체적인 조형의 개념은 바우하우스 초기 개념과 러시아 구성주의 조형성으로 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 최대의 전시면적과 공간적 경험을 살린 전시장  제한된 면적에서 최대의 전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지하로를 확장하는 개념으로 내부 공간을 풀었다. 또한, 논현대로에 면해있는 좁은 전시 공간을 더욱 확보하기 위해서 스킵플로어 형식으로 디자인하여서, 최대한 대로변에 면한 전시공간을 확보하기위해서 노력하였다. 진입부 레벨에서 지하로 확장된 공간들은 틈새공간과 다양하게 연출되는 공간의 변화로, 새로운 이미지의 가구 전시장으로 아이덴터티가 형성되도록 하였다. 초기 계획에서는 사무실 공간도 두려고 하였으나, 전시공간이 부족해 전 층이 전시공간으로 변경됨에 따라서, 지하 3 개층과 지상 7 개층 합계 10개층이 전시장이 되었다. 층마다 다양한 크기의 전시장을 만날 수 있도록 고려하였고, 가끔씩 개방 창호들을 만나면서 도시의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의외성을 주었다. 논현동 가구거리에 건축은 있는가? 가구도 건축이다. 다시 말해 가구의 구축기법은 건축과 동일하다. 즉, 가구는 건축의 연장선에 있다. 논현대로에서는 가구가 주인공이지만, 가구와의 깊은 관계를 고려한 건축을 선보이고, 최소한 가구도 건축이라는 개념이라는 논제가 입증이 될 만한 건축을 선보여야한다는 큰 부담이 있었다. 논현동 가구거리에 새로운 건축적 시도로 가로의 조그만 변화가 시작되리라는 희망과 함께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라는 관점에서 의미를 가져 본다. 글 양진석  사진 Y GROUP 제공  양진석 건축, 인테리어, 디자인 작업뿐만 아니라 강연, 리더 건축교육, 방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 하게 활동하는 건축가. 소외 계층을 위한 집짓기를 다룬 MBC <러브하우스>에 출연해 건축•인테리어 분야의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대학 대학원에서 건축학 석사와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현재 리더들을 위한 건축교육 프로그램 NA21과 PAI FORUM의 주임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또한 국회 인문학 과정 의 주임교수를 맡아 국회위원과 고위직 공무원을 대상으로 건축도시교육을 진행했다. 현재 서울시 건축위원회 위원이며,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의 각종 도시건축정책에 폭 넓은 자문 활동도 진행하고 있다. 현재 JTBC <내 집이 나타났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업그레이드된 주택 신축 프로젝트를 선보이기 위해 설계를 끝내고 시공 중에 있으며 프로그램 사전 제작중이다. 또한 ‘러브하우스’ 플랫폼 서비스 앱을 개발하여, 건축•인테리어 분야의 발전을 도모하고, 업계 전문가들과 소비자가 직접 만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지고, 소비자들이 쉽게 다가가도록 정보와 재미를 담은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으로 새롭게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저서로는  교양건축(디자인하우스,2016),  양진석의 친절한 건축이야 기 ( 위즈덤하우스, 2011 ) , 건축가 양진석의 이야기가 있는 집(시공사 2001)  등이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용평리조트 더 포레스트 레지던스, GRAN SEOUL & 청진상점가(식객촌), DDP 개관 초청 전시, KT&G 내장산 호텔&연수원, 카이스트 뇌연구소 초청 국제 현상 설계 등이 있다.
OPENSTUDIO 운생동, 장윤규, 신창훈 성북동의 한 주택을 개조한 운생동 사무실은 주택의 골격을 그대로 드러내고 철골로 구조를 보강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도로와 만나는 1층 주택의 주차 공간을 개조해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거나 사무공간으로 쓰며, 2층과 3층에는 사무실을 꾸몄다. 특히 운생동 사무실은 벽면에 가득 걸린 젊은 작가들의 작품도 눈길을 끈다. 대학로 갤러리 정미소를 운영, 기획해 온 건축가 장윤규의 컬렉션이기도 하다. 크링, 갤러리303, 광주디자인센터 등 과감한 형태와 생동감을 표현해온 운생동의 건축 이야기를 건축가 장윤규와 함께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사진 운생동 제공
PUBLIC CONNECTION with Seoul Architecture Festival 육군사관학교 종교교육 및 복지시설, 양수인, 이흔주 종교적인 자발적 유대뿐 아니라 육군사관학교라는 구속적 연속성이 보장되는 집단 안에 위치한 건물에 각인된 종교적인 이야기는 오랜 기간을 걸쳐 서서히 밝혀지고 전달될 확률이 극대화된다. 2층 높이의 법당은 기본적으로 박스를 조합한 일상의 공간 위에 원형의 종교공간이 얹힌 모습이다. 1층에는 기능적 공간(사무실, 화장실, 교무실 등)이 중앙부에 밀집 배치되어 있으며, 사각형 박스를 조합한 수련공간(학년별 회의실, 개인 기도실 등)은 세 방향으로 돌출되어 외부에서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하게 계획했는데 원불교에서 강조하는 일상생활 속 세 가지 수련법(삼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외부로 열린 평면을 구성한다. 2층의 대각전(본당)은 원불교의 진리를 상징하는 원형의 평면이다. 원형 공간의 내벽과 외벽에는 원불교의 핵심 교리인 4가지 은혜(사은)와 4가지 실천 덕목(사요)을 상징하는 큰 개구부가 4개씩 마련돼 있다. 점토벽돌 영롱쌓기 외피는 일상에 열려 있음을 중시하는 원불교 정신을 물질적으로 표현하면서 4개의 창에 빛을 통하게 한다. 한국의 현대 종교건축에서 종교행사의 연출은 전자 장비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영적인 공간 경험과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본 건물 본당의 내부 구성은 역설적으로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원칙을 따랐다. 반면, 전략적으로 가장 영적이고 종교적인 경험은 1층과 2층을 잇는 계단에서 구현했다. 이 ‘귀의’의 계단의 투명한 입면은 외부경관과 종교공간사이의 전이와 그 과정에 있는 사람의 움직임을 드러낸다. 글 양수인  사진 신경섭 
OPENHOUSE 아이뜰 유치원, 손진 아파트와 상가로 점철된 수지의 한 부분에 도시와 마을의 속성을 강하게 담은 유치원을 만들어 보고자 했다. 유치원은 남쪽에 산을 등지고 북쪽으로는 한쪽이 트인 분지에 면하고 있다. 강당을 비롯한 부대시설들을 담고 있는 커다란 장방형의 지하가 산으로 반 묻혀있고 네 개의 서로 다른 크기의 매스가 그 위에 높이차를 두고 산을 타고 오르는 형국이다. 45도의 각으로 서로 틀어져 만나는 매스들에는 각 층마다 여섯 개의 교실이 뱀 모양의 복도를 두고 같은 레벨에 배열되어 어린이들의 풍경이 펼쳐진다. 지하의 장방형 구조와 틀어진 네 개의 매스가 만나는 형식은 다양한 레벨의 풍부한 외부 공간이 가능하게 하며 주변의 경관과 빛에 세세히 반응한다. 각 층은 같은 교실의 배치를 유지하는 반면, 층마다 다른 바닥 색깔과 개구부의 배열은 내부에서 펼쳐지는 풍경에 다양성을 부여한다. 콘크리트와 시멘트 벽돌로 이루어진 분절된 매스가 뒷산과 서측의 넓은 잔디 마당과 어우러지게 배치하였다. 글 이손건축  사진 김종오  이손건축 https://www.isonarch.com 손진 홍익대학교 건축학과를 나온 뒤 1987년 이탈리아로 떠났다. 베네치아 대학(I.U.A.V) 에서 공부하다 1993년 Napoli에 있는 이탈리아 건축가 Francesco Venezia의 사무실에서 실무 경험을 시작하여 1995년 중반에 끝마쳤다. 그후 Macedonia의 Skopije에서 감독 Unkovsky가 추진하던 구 탄약창고를 극장으로 전환시키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건축주가 문화부 장관이 되는 바람에 극장프로젝트의 실현을 보지 못하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유럽 체류중 대지와 건축 그리고 햇빛의 강렬한 일체화에 인상을 받았으며 오랫동안 한국의 건축에 잊혀져 왔던 건축의 본질에 대해 반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997년 현재 운영중인 이손건축을 이민과 함께 설립하였다. 초기의 천사유치원을 시작으로 꾸준히 유치원과 어린이집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으며 주로 아파트로 둘러 쌓여 있는 척박한 신도시의 환경에서 아이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도시적 공간에 대해 고민해 왔다. 최근에는 일련의 주택 프로젝트를 통해 중산층으로 구성된 60년대 이후의 동네와 주거공간의 관계 설정이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 건축의 물질적 존재성 보다는 사회적 유동성에 방점이 찍히는 듯한 작금의 흐름에서, 현재 한국의 도시 문제에 있어 전자의 중요성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고 믿으며 한 도시는 역시 건축의 확고한 물질성에 의해 좌우된다고 믿는 편이다.
PUBLIC CONNECTION with Seoul Architecture Festival 불암골 행복발전소, 정영섭+홍영애 아이들은 뛰어 논다. 아이들은 뛰어야 하고 놀아야 한다.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애정이 충분할 때, 아이들은 자유롭게 뛰어 논다. 지역아동센터는 부모를 대신하여 아이들에게 애정을 주고 돌봄을 제공해야 한다. 대지는 아파트 단지들과 불암산 사이에서 겨우 남아 있는 저층 주거지에 자리한다. 격자로 계획된 아파트단지와는 비교되게도 별모양의 부정형 대지이다. 이 곳이 얼마나 계획되지 않았는지, 얼마나 소외되어 있는지를 보여 주는 듯했다. 두 개의 돌봄 교실, 아이들을 위한 주방과 식당, 사무실, 북 카페를 계획해야 했다. 발주처는 돌봄을 받는 아이들과 북 카페를 이용하는 어른들을 통하여 마을의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기를 기대 했다. 집집이 모여 이루어진 마을과 여러 프로그램이 어우러져야 하는 아동센터는 닮아 있었다. 기존대지에는 마을 사람들만 아는 지름길도 있었다. 프로그램 실들은 작은 집들이 되고, 주출입구-중정-부출입구로 이어지는 복도는 마을 지름길이 되었다. 단층의 지역아동센터는 3~4층의 다가구, 다세대에 둘러싸여 있다. 주거지에 친근한 소재인 목재와 돌로 외벽을 마감하였다. 부정형 대지를 따라 실들을 계획하고, 지붕은 불암산의 경관을 따라 경사로 계획 하였다. 주변 건물에서 내려다 본 지붕은 그 모습이 마을이고 건물의 입면이기도 하다. 소규모 건물에 해당하여 인증절차는 생략하였지만, 건축물에너지효율1등급에 준하는 단열재와 창호를 계획하고 신재생에너지 설계를 적용하였다. 발주처가 공공건축물이 가져야 할 지속성에 대한 관심과 확고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공모전을 통하여 진행된 설계를 하며, 우리는 마지막까지 모든 계획에 참여 하고 싶다는 의지를 전달했다. 발주처는 그 기회를 주었다. 인테리어 설계를 시작할 때에 실제 북 카페를 운영할 주민과 아동센터의 운영자를 만났다. 가장 즐거우면서 동시에 괴로웠던 순간이었다. 이제야 주인을 만나 소통하고 진정한 설계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즐거웠지만, 사용자의 계획을 미리 담아내지 못해 기존의 건축계획을 수정해야 하는 점에서 아쉽고 괴로웠다. 지금 불암골 행복발전소 지역아동센터에는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다. 우리는 오늘도 북 카페를 운영하는 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2014년 5월의 공모전이 2016년 여름까지 이어지고 있다. 글 moldproject  사진 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