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교동 아미티스 빌딩

임형남, 노은주

2017년 10월 21일 2:00PM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35-6

주택가이자 인디문화의 진원지로 작동했던 홍대앞은 어느 순간 몰려드는 인파와 상업시설이 범람하면서 실제 거주하는 인구는 줄어들고 있다. 상업화로 몸살을 앓는 이 지역의 현상을 ‘사막화’로 비유한 가온건축의 건축가 임형남, 노은주는 사막 위에 조성된 녹색 정원처럼 도심 안에 나무와 풀이 가득한 정원을 만들기로 한다.

바빌론 왕국의 네부카드네자르2세가 조성했다는 공중정원을 모티브로 한 건물은 6층 규모의 콘크리트 건물이다. 밀집된 지역의 특성상 주변 건물과 붙어있어 건물 전면에는 가벽을 두어 적당히 시선을 걸러낼 수 있도록 했고, 카리프트 상부와 사선제한으로 만들어진 부분에 테라스와 옥상 정원을 설치하고 1층과 지하의 선큰 가든 등 각층에 정원을 만들어 건물은 도심의 ‘공중정원’을 품고 있다.

복잡한 주변 골목과 틈을 이용해 모든 층이 도로에서 직접 진입할 수 있도록 했고, 도로와 연결되는 진입로를 최대한 확보해 여유 공간을 만들었다. 주변의 시선에서 보호하기 위해서 설치한 가벽은 테라스 역할도 하면서 내부에서 바깥을 바라볼 수 있는 창이 되기도 한다. 


OHS

 

‘홍대앞’이라는 장소는 무척 특별한 곳이다. 예전의 예술적이며 고적한 분위기의 대학 주변 시설과 주택가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가 어느 순간 떠들썩하고 복잡한 곳으로 변해버렸다. 지하철역을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로 인파가 그득하고 홍대앞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모래알 같은 사람들은 문화를 표방하지만 홍대앞은 점점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다양한 도시적인 해법이 존재하겠지만 가장 일반적이며 쉬운 방법인 나무와 풀을 심는 일부터 시작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 사막에 만들어놓은 공중정원처럼 도심 안에 나무와 풀이 가득한 정원을 하나 만드는 것이 계획의 시작이다.

기원전 600여년 쯤 지금의 이라크 어디쯤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바빌론 왕국에 네부카드네자르 2세라는 왕이 있었다. 그는 메디아 왕국의 공주 아미티스와 결혼했는데, 아내를 무척 사랑했는지 산림지대에서 사막으로 시집 와 향수병에 걸린 그녀를 위해 정원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 정원은 땅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계단식 발코니 같은 구조물에 흙을 덮은 이른바 ‘공중정원(hanging garden)’으로, 그 위에서 사람들이 걸어 다녀도 될 만큼 튼튼해서 보통 지면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정원의 식물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유프라테스 강에서 수도관을 통해 물을 끌어왔다고 하니 아마도 당시의 첨단 기술은 모두 동원되지 않았을까. 비록 실제 유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사막 한가운데 만들어진 땅이 아니라 하늘에 걸쳐진 정원을 모티브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사막화 되고 있는 도심 한복판에 생기를 불어넣는 건물을 만들고자 했다.

이 건물은 용도가 특정되지 않는 6층의 콘크리트 건물이다. 바짝 붙어있는 건물들과 시선을 적당히 피할 수 있도록 전면에 가벽을 설치하였고 카리프트의 상부와 사선 제한으로 셋백되는 부분을 이용하여 각 층에 ‘공중정원’ 개념의 테라스와 옥상정원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각 층으로 도로에서 바로 접근하는 출입구를 설치하여 진입 시 다양한 선택권을 부여하였다. 1층 부분은 틈을 이용하여 4개의 진입로를 만들고, 그 주변에 자연스러운 조경공간을 조성했다. 사용자들은 각각의 진입로를 통해 건물로 들어가거나, 중정을 향하거나, 2층으로 오르거나 뒷면의 정원으로 바로 들어가게 된다. 마치 산으로 오르는 것처럼 올라가다 돌아보면, 자신이 왔던 길을 되돌아 볼 수 있도록 여러 방향으로 움직이는 동선을 의도한 것이다.

건물의 뒷부분에는 뒷집과의 틈을 벌려 약간의 여유공간을 만들고 우리에게 친숙한 마사토를 깔아, 마치 예전에 다니던 초등학교의 뒷마당 같은 한적하고 명상적인 공간을 만들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선큰 가든도 키가 무척 크고 가지가 넓게 펼쳐지는 단풍나무를 심어 넓고 안온한 지하의 마당으로 조성했다. 잘 다듬고 가꾸었다기 보다는 자연스레 조성된 ‘뜰’의 개념으로 의도된 조경은 노출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건물의 질감과 사뭇 대비가 되면서도 각이 진 건물을 부드럽고 친숙한 공간으로 만들어준다.
건물의 전면에 배치된 가벽은 각 층에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전면 테라스 역할을 하며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대지면적 : 430.3㎡ (130.2평)
건축면적 : 223.22㎡ (67.5평)
연 면 적 : 1,136.8㎡ (343.9평)
건 폐 율 : 51.88%
용 적 율 : 194.9%
규    모 : 지하 1층, 지상 6층


가온건축  사진 김용관 


가온건축
http://www.studio-gaon.com


임형남, 노은주
가온건축(studio GAON) 공동 대표인 임형남(Lim Hyoungnam), 노은주(Roh Eunjoo)는 땅과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둘 사이를 중재해 건축으로 빚어내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1998년부터 함께 가온건축을 운영하고 있다. ‘가온’이란 순우리말(순한국어)로 가운데라는 뜻과, ‘집의 평온함(家穩)’이라는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 가장 편안하고, 인간답고, 자연과 공존하는 집을 만들고자 한다.
금산주택, 루치아의 뜰, 신진말 빌딩, 존경과 행복의 집, 언포게터블, 미장아빔 등을 설계했다. 적십자 시리어스 리퀘스트, 유니세프 관련 청소년 시설, 북촌길‧계동길 탐방로 등 도시․사회 관련 설계를 진행했다.
조선일보, 세계일보 등에 건축 관련 칼럼을 연재하고 있고, 『그들은 그 집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사람을 살리는 집』, 『나무처럼 자라는집』, 『작은 집, 큰 생각』, 『이야기로 집을 짓다』,『서울풍경화첩』 등 10권의 저서를 냈다.
 

Map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35-6
건축가 임형남, 노은주
건축주 박은혜, 박지환
일시 2017년 10월 21일 2:00PM
위치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35-6
집합 장소 서교동 아미티스 빌딩 건물 앞
인원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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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House 이상범 가옥 동양화가 청전(靑田) 이상범이 살았던 집이자 화실인 이곳은 2005년 등록문화재(제171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가옥은 서울시가, 화실은 종로구가 소유해 관리하고 있으며 일반인들이 방문 가능하도록 개방하고 있다.  문화재청에 의하면 가옥은 1930년대 누하동을 비롯하여 경복궁 서쪽 지역에 형성되었던 도시형 한옥 건물로 이상범 화백이 43년간 거주한 곳이며 희소성에서도 그 가치가 인정된다. 또한 화실은 이상범 화백이 화실로 사용하던 곳으로 이상범 화백이 작업에 열중하는 모습을 연상할 수 있는 곳으로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있어 가옥과 함께 선생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청전양식’이라는 자신만의 화법을 전개하던 산수화가인 이상범은 1942년부터 1972년 작고할 때까지 누하동 가옥에서 살았으며 배렴과 박노수 등이 배출되었고 그의 전성기 작품이 거의 이곳에서 완성되었다. 주택은 ㄱ자 안채와 ㅡ자 행랑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근대 도시한옥이지만 드물게 부엌에 찬마루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상의집, 최근 종로구립미술관으로 변신한 박노수 가옥과 함께 서촌의 근대 예술가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장소다. 글 서울시 사진 문화재청 장소 서울시 종로구 필운대로 31-7, 31-8 (누하동) +참고자료 문화재청: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79,01710000,11 네이버캐스트:  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2860&contents_id=76052
Special 현대카드 본사 3관, 최욱 10월 21일 3:00PM
OpenHouse 서교동 아미티스 빌딩, 임형남, 노은주 10월 21일 2:00PM
Special 현대카드 영등포사옥, 최욱 10월 21일 1:30PM
Special community house, 조병수 * 'community house' 로의 참가신청은 아래 링크에 안내된 'ㅁ자집' 의 포스팅에서 신청하시면 됩니다.   참가신청 링크 바로가기 사진 황우섭  스케치 조병수  조병수건축연구소 http://www.bchoarchitects.com/bcho.html 조병수 1994년에 조병수건축연구소를 개소한 이후 ‘경험과 인식’, ‘존재하는 것, 존재했던 것’, ‘ㅡ자 집과 ㄱ자 집’, ‘현대적 버나큘라’, ‘유기성과 추상성’ 등을 주제로 건축 활동을 이어왔다. 하버드대학교, 콜럼비아대학교, 독일 카이저슬라우테른 대학교와 연세대학교, 몬태나대학교, 하와이대학교 등 여러 대학에서 설계와 이론을 가르친 바 있다. 대표작으로 파주 어유지 동산, 수곡리 ㅁ자 집, 땅집 등이 있다. 한국건축가협회상, 미국건축가협회상, AR House awards (Highly commended) 등을 수상하였다.
Special 꺾인 지붕 집, 조병수 * '꺾인 지붕 집' 으로의 참가신청은 아래 링크에 안내된 'ㅁ자집' 의 포스팅에서 신청하시면 됩니다.   참가신청 링크 바로가기 사진 Sergio Pirrone 스케치 조병수 조병수건축연구소 http://www.bchoarchitects.com/bcho.html 조병수 1994년에 조병수건축연구소를 개소한 이후 ‘경험과 인식’, ‘존재하는 것, 존재했던 것’, ‘ㅡ자 집과 ㄱ자 집’, ‘현대적 버나큘라’, ‘유기성과 추상성’ 등을 주제로 건축 활동을 이어왔다. 하버드대학교, 콜럼비아대학교, 독일 카이저슬라우테른 대학교와 연세대학교, 몬태나대학교, 하와이대학교 등 여러 대학에서 설계와 이론을 가르친 바 있다. 대표작으로 파주 어유지 동산, 수곡리 ㅁ자 집, 땅집 등이 있다. 한국건축가협회상, 미국건축가협회상, AR House awards (Highly commended) 등을 수상하였다.  
Special 땅집 : 윤동주의 하늘과 땅과 별을 기리는 집, 조병수 * '땅집' 으로의 참가신청은 아래 링크에 안내된 'ㅁ자집' 의 포스팅에서 신청하시면 됩니다.   참가신청 링크 바로가기 땅 집은 하늘 집이다. 윤동주의 하늘과 땅과 별을 기리는 집이다. 나는 건축가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서, 또한 한 생명체로서 이곳을 만들고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싶었다. 한 평짜리 방, 서재, 욕실, 부엌에서 그리고 하늘, 땅, 흙 마당에서 달을 보고 싶었다. 마치 절박했던 시대에 그의 시가 항상 미래를 향한 희망이었던 것처럼, 그리고 그것을 자기 자신에 대한 절제와 성찰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것처럼, 이 땅 집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를 돌아볼 수 있는 집이 되었으면 했다. 땅 속에 박힌 14×17m 콘크리트 상자에는 6평의 작은 집과 마당이 있다. ‘작은 집’은 마당을 향하고, 마당은 하늘을 향해 열려 있어 그 속으로 하늘과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 한 평짜리 방은 한 칸짜리(6×6자) 방 크기에서 유래되었다. 땅 집은 한 평짜리 방 6칸과 작은 마당이 전부다. 성인 남자가 두 다리를 뻗고 누울 수 있을 정도의 빠듯한 방과 서재, 부엌, 화장실이 있다. 건물 내부에 따로 복도 없이 외부로 나가게 되고, 2개의 방은 문을 열고 터서 쓸 수 있는 전통적인 방식을 취하고 있다. 집으로 들어가는 문, 마당을 통해 실내로 들어가는 문, 서재에서 뒷길로 통하는 문 모두 허리를 깊게 숙이고 들어가야 하는 작은 문이다. 글 조병수건축연구소    사진 김용관   스케치 조병수  조병수건축연구소 http://www.bchoarchitects.com/bcho.html 조병수 1994년에 조병수건축연구소를 개소한 이후 ‘경험과 인식’, ‘존재하는 것, 존재했던 것’, ‘ㅡ자 집과 ㄱ자 집’, ‘현대적 버나큘라’, ‘유기성과 추상성’ 등을 주제로 건축 활동을 이어왔다. 하버드대학교, 콜럼비아대학교, 독일 카이저슬라우테른 대학교와 연세대학교, 몬태나대학교, 하와이대학교 등 여러 대학에서 설계와 이론을 가르친 바 있다. 대표작으로 파주 어유지 동산, 수곡리 ㅁ자 집, 땅집 등이 있다. 한국건축가협회상, 미국건축가협회상, AR House awards (Highly commended) 등을 수상하였다.  
Special 수곡리 ㅁ자집, 조병수 10월 21일 8:30AM
Special 근대적 자아로서의 개인, 건축가 최욱 ④ 깨어 있는 개인, 일상성의 회복 일상을 유지하는 방법이 흥미로워요. 비교적 일찍 주무시고 새벽에 일어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새벽 시간에는 주로 무엇을 하시나요. 특별한 일을 하는 건 아니에요. 깨어나서 일기를 적어요. 전날에 대한 일기 혹은 꿈에 대한 분석. 시인 랭보가 새벽으로부터 아침으로 깨어나는 시간을 굉장히 좋아했거든. 해가 떠있을 때 깨어나면 기분이 안 좋아요. 어스름한 상황에서 밝아오는 걸 직접 봐야 편해요. 내가 있는 공간도 늘 해를 뜨거나 지는 것을 바라볼 수 있어요. 그렇게 가볍게 책을 읽거나 마당이나 서재를 돌아다니거나 그리고 운동하러 갔다가 사무실에 와요. 대부분 4시 전에 일어나죠. 우리 집 옆에 절이 있는데, 어느 스님이 염불을 안 외우는 지 다 알아.(웃음)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겠네요. 귀한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건축을 하다보면 사무실에 나와서 내 시간을 갖기는 힘들잖아요. 전화를 받거나 미팅을 하거나,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없죠. 아침 시간에 건축을 하는 건 아니거든, 개인적 시간이지.   아침 시간을 위해서 일찍 주무시잖아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저녁 모임이 만들어내는 사회 생활이라는 게 있고 모두들 참여하길 원하잖아요.   저는 저녁을 아내와 같이 해요. 사회 생활을 싫어하는 것은 아닌데, 공식적인 사회 생활은 거의 참석을 안 하죠. 저녁때 외국에서 온 친구들 혹은 직원들, 내 주변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 빼고는 거의 없어요.   언제부터 그렇게 생활하셨나요.  학생 때는 당연히 그런 라이프스타일을 가질 수 없죠. 늘 밤을 새야 하니까. 장건축에 다닐 때는 사무실의 스케줄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잖아요. 1994년도에 개인 사무실을 만들면서 서서히 그렇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 그때는 젊었고 직접 모형, 도면부터 일을 다 했어야 하니까. 4시간은 자야 되잖아요. 그 생활이 습관이 되었고, 그때부터 20년 정도 된 것 같아. 시간이 지나면서 라이프 스타일에 맞게끔 공간을 다 바꿔놓았죠.   집에도 해가 뜨는 걸 볼 수 있는 큰 창을 만들고, 사무실도 그렇구요. 큰 창을 만드는 건 어릴 적 기억 때문인 것같아요. 어릴 때 몸이 아팠거든. 그래서 집안에서만 살았다고. 6년 정도 집에서만 살다보면 큰 창이 필요해요. 집이 부산이었는데, 마당이 있고 대청이 있었던 기억이 나요. 한때, 내 작업을 스스로 분석해봤어요. 항상 창이 커요. 시선이 내부에서 외부를 바라봐요. 그게 한국건축의 특징이거든. 내 작업에 그런 특징이 있더라고. 원인을 분석해보니 어릴 적 기억이 영향을 미쳤을 거 같아요. 그러다 보니 밖에서 들리는 소리, 냄새에 민감해지는 거지.   한국은 워낙 모임도 많고 더군다나 클라이언트가 있는 직업이라 거절하기 힘든 상황도 있잖아요.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물론 기본적인 것은 참석하지만, 가급적이면 안 만든다는 것이고 그러다보니 패턴화되죠. 저는저녁 파티를 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지고 있었잖아요. 와인바도 있었고, 사무실도 술 마실 공간이 있고. 내 라이프스타일에 필요한 공간이 이 범주에 다 있어요. 그래서 가급적이면 밖으로 안 가죠. 그런지 오래 됐어요. 내 라이프스타일 안에서 할 수 있는 정도로만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거지.   한국에서 사회적으로 작동하는 관계들, 저녁 행사와 술자리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은데, 불안하지 않았을까 궁금했어요. 안 불안해요.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는 건축가가 되어야 되겠다는 생각도 별로 없었고, 현실적으로 목적을 위해서 달려가야겠다는 생각을 안 했어요. 모든 게 그냥 과정이었고 어떻게 해결하냐의 문제였죠. 내가 성격은 예민한데 세상에 대해 약간은 둔감해요. 호기심은 있지만, 기웃거릴 정도의 호기심은 없던 것 같아요. 조르지아 아르마니의 자서전을 보면, 이 사람이 워커홀릭이거든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한다구요. 기자가 어떤 책을 보냐고 물었을때, 너무 바빠서 책을 볼 시간이 없다고 해요. 주말에 뭐하냐고 물으니, 자기 친구랑 TV를 본대요.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편안하게 자신의 일상을 지켜준 친구가 있다는 거잖아요. 그게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물론 현실 생활은 그보다 복잡하겠죠. 하지만 저런 태도로 살아가면, 자신의 내적인 에너지가 나와서 남에게 공감을 일으키는 거잖아요. 저렇게 살 자신만 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자기 루틴을 가지고 주말을 보낼 수 있고, 일상이 그냥 자신의 충만한 삶이면 좋겠다 싶어요.   개인의 세계에 몰두할 수 있는 것, 그것이 가장 큰 힘이 아닌가 싶어요. 젊은 세대가 그렇게 하기 힘든 이유는 불안감에 있지 않을까 싶어요. 소셜네트워크가 남을 기웃거리게 되어 있죠.   SNS는 전혀 안하시나요?   안 해요.   스타건축가가 되기보다 일상성을 중요시하는 것을 대비시켜 한 말씀이 인상적이었어요. 하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이렇다 할 건축가의 위상 자체가 없다보니 스타건축가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스타건축가의 정의가 뭘까요?   대중들이 인지하고, 많은 건축주가 우선적으로 그 브랜드를 사려고 하죠. 그렇죠. 우리가 코카콜라를 먹을 때 항아리에 먹으면 맛이 안 나잖아요. 거기에는 광고의 전략이 숨어있는 거잖아요. 스타건축가는 디자인을 잘해서만 스타건축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 상황이나 순간이 만들어낸 브랜드 가치가 있는 거고, 광고처럼 돈을 더 줘도 스타건축가를 써서 광고 효과가 있어야 스타건축가거든요.   작품과 퍼스널리티가 분리된거죠. 분리된거죠. 자본주의가 심화되면 건축이 광고판이 되는 거고, 스타건축가를 쓰는 게 월등하게 유리하기 때문에 30년 전의 스타는 지금도 스타예요. 자본주의에서 이익이 되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스타건축가로서의 자질을 갖춘 건축가가 없다는 게 아니라, 그런 스타성을 건축가가 못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탄생하지 않는 것일 거고. 스타건축가는 사회의 메커니즘 안에서 탄생하는건데, 스타건축가가 되기 위해 건축을 한다는 게 내 입장에서는 어리석고 철없이 느껴지는 거죠. 되면 좋지만 렘 쿨하스처럼 흉내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거든. 주어진 여건과 현실에서 성실하게 해나가는 태도는 중요하잖아요. 우리 사무실에서도 잡지책으로 큰 사람들은 어느 순간만 극복하면 스타가 될 수 있다고 믿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나는 사무실 세미나에 다 동네 건축가들을 초청해요. 화려하지 않더라도 진중하게 만들어내는 사람들. 진지한 생각 자체가 모여서 나라가 되는 거거든요. 한두 명의 스타가 나라를 만들진 못해요. 스타건축가가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다국적 기업이 있어요. 유태인이 주를 이루죠. 출발이 달라요. 우리가 유태인이 될 수도 없는 거고. 그 사회 현실을 모르고, 내가 엉뚱한 곳에서 춤추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죽으면 억울하잖아요. 엉뚱한 곳에서 춤을 안 추겠다는 거죠. 에너지 낭비를 안 하겠다는 거지. 그래서 내가 말하는 일상성은 흔히 이야기하는 일상(everyday life)을 말하는 게 아니라, 한 개인의 세상에서 자신의 자각이 인지된 자아에요. 그걸로 일상을 살아야 된다는 거지.   개인의 일상성을 자각하고 개인적인 세계에 몰두하는 건, 창작활동을 하는 모든 분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묵묵히 자기 내면의 시간, 내적인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 내 일상은 지극히 잠잠해요. 특별한 것이 없어요. 호기심이 별로 없죠.   사회가 가지고 있는 미학적 가치는 번뜩이는 천재가 만드는 게 아니라 꾸준한 항성, 일상이 만들어간다는 이야기하셨는데요. 하루키가 글쓰는 작업을 마라톤에 비유한 게 생각나더라고요. 삶에 대한 철학으로 일상성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네요. 사르트르가 구토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게 상징적으로 일상에 대한 구토거든. 근대적 자아로서의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일상을 회복하는 것은 통상적인 일상에 대한 구토로부터 시작이 된다고 이야기하잖아요. 그 일상이라는 것은 항상 깨어있는 것. 열린 깨어남이죠. 그게 일상이어야 하고 그게 아니면 습관이죠.   중요한 부분이네요. 재미있게 읽은 책이나 영화가 있나요. 워낙 책은 잡식이라. 그보다 기억에 남는 책을 뽑으라고 하면 티지아노 테르자니라는 이탈리아 종군기자가 죽기 전에 아들에게 구술한 내용을 엮은 책이 있어요. 티지아노 테르자니는 뛰어난 중군기자였어요. 중국이건 캄보니아건 위험한 전선으로 달려가 세상에 알렸거든. 지식인으로서의 큰 의무였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고 해요. 그런데 아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요. 역사는 그런 쳇바퀴에서 끊임없이 달려가는 거였더라.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것은 역사가 아니며, 그저 하나의 단편적인 진실을 전달하는 전달자밖에 아니었다. 그래서 네가 하고 있는 일에 큰 역사적인 일을 부여하는 것은 착각일 수 있으니 그냥 네가 진짜 원하는 것을 하라고 말해요. 소위 공명심을 가지지 말고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사는 것이 인간으로서 진실한 행복일거다’ 이게 아버지의 결론이에요. 『네 마음껏 살아라((La)fine e il mio inizio)』, 좋아하는 책이에요. 중국작가들 책도 좋아해요. 중국 작가들은 문필이 뛰어나고 교묘할 정도로 지적이고, 익살스러워요. 그 이유는 검열을 피하기 위해서인데, 그 단수가 보통이 아니에요. 특히 위화(余華,  Yu Hua), 모옌은 정신적인 레이어가 참 대단하다 싶어요.   취미 생활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집중하는 것이나. 사소한 것들. 대단한 취미는 없고. 나는 매니아는 될 수 없는 사람이에요. 책은 꾸준히 보고 많이 봐요. 가볍게 읽는 책들. 음악도 거의 안 들어요. 그냥 일상을 기록하는 게 내 삶인 것 같아. 느끼고 보고, 가끔 여행 다니고.   올해 오픈하우스서울에서 공개하는 프로젝트에 대해서, 방문하시는 분들이 어떤 측면을 주목해서 봤으면 하시나요. 우리가 만든 공간들의 기본적인 태도는 1964빌딩을 예로 들자면 상부의 공간은 그냥 기능적인 것이고 저층부는 높이 열려서 주변과 포용하는 것이에요. 공공에 열려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공간에서는 시각적으로 일소점 투시가 생기는데, 1층 로비 내부 공간을 보면 의도적으로 일소점을 깨는 요소들이 있어요. 내 해석으로 일소점을 깬다는 것은 시각적인 것이 아니라 느낌이나 인지적인 공간을 만드는 것이에요. 쿠킹 라이브러리 같은 경우에는 예를 들어 부엌이라고 하면 김이 오르고 냄새가 오르는 것들이 포함돼서 공간이 이뤄져요. 공간이 시각적이 투시도가 아니라는 거죠. 낮에도 빛이 들어와서 거리와 동화되기도 하고 밤에는 낮과 밤이 절묘하게 교차해요. 밖에서 보면 단순하지만 안을 살짝 엿보면 뭔가 부엌이라는 공간이 주는 따뜻함, 자연광이 있고, 밤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장면들을 연상해서 보면 좋을 것 같아요. 디자인 라이브러리도 마찬가지로 주변에 가로등이 몇 개 없어요. 그런데 밤이 되면 도서관에 포근하게 조명이 켜지면서 사람들이 공부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들이 중요해요. 그런 부분이 공공에 대한 배려 같아요. 주변으로 열려있고. 내부는 빛에 대해 다루고, 형태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라는 것. 그런 생각들을 어떻게 현실화시킬 것인가를 통해서 부산물처럼 나온 것이 외관이죠. 파사드 디자인을 거의 안해요. 그것이 한국건축이라고 보고 있어요.   그것을 실행시키는 과정에서 재료에 대한 탐구, 물질로써 공간을 만들기 위한 완성도를 높이는 노력을 계속 해온 것이네요. 한옥에 몰두해 왔으니까 한옥의 현상학의 미에 대해서 주목하죠. 앞서 말했듯이 그림자의 퀼리티가 내외부가 다르다는 것에 주목을 하고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외벽은 거칠게 처리하고 바닥의 마감은 단단한데, 그 위에 가벼운 건축이 있는 거죠. 우리나라 건축이 그런 거잖아요. 예를 들어 로비 내부의 윗면에 넓은 면이 펼쳐지면 압도적이죠. 근데 윗면이 선이 되면 압도적인 면이 없어져서 천정면이 시각적으로 분산되고 가벼워져죠. 그래서 시각적인 투시도 효과, 중압감이 덜 생긴다는 거죠. 재료 같은 경우, 퍼스펙티브가 생기지 않는 화면을 만들기 위해서 어떤 재료가 개입되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그런 의견을 통해서 공간이 나오는 거죠.   건축을 모르는 분들이 서울이라는 도시를 흥미롭게 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자연스럽게 볼 수 있으면 가장 좋은데. 서울의 역사, 도시 구조를 아는 것은 중요한 거 같아요. 아돌프 로스가 방에서 살기 위해서는 악기 연주하는 법을 배우듯 방에서 거주하는 법을 배워야 된다고 했거든. 도시에 머무는데 이 도시에 대한 지식이 없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불행한 거에요. 서울이 어떻게 형성이 되어있고. 인구밀도가 전 세계적으로 높고 지형학적으로 굉장히 독특한 입지를 가지고 있고, 빨리 성장했고, 600년 동안 도읍지였고, 그런 것들을 잘 해석하다보면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읽히는 게 있거든요. 그렇지 않다면 이 도시가 못 생겼다는 식으로 볼 수도 있어요. 서양의 시각에서는 이 도시의 밀도, 에너지, 불협화음 등에서 생동감이 있다고 느끼고, 가능성을 찾구요. 이 도시를 건축적으로만 바라보면 굉장히 시선이 한정적이에요. 포괄적으로 보고 즐겨야 미래 예측도 가능하죠. OHS   진행 임진영, 최춘웅 사진 정유진  +참고문헌: 와이드건축 55호 건축가 최욱 특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