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House

준오 아카데미

켄민성진

2018년 10월 21일 3:00PM
서울 강남구 삼성로 710
예약금 10,000원 결제 후 참석 시 환불
사진_신경섭
사진_신경섭
사진_신경섭
사진_송재영
사진_신경섭
사진_신경섭
준오헤어는 회사가 지속해서 성장, 발전하기 위해서는 직원들의 교육이 원동력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위해 전문적인 인재교육 시스템을 운영하기 위한 교육 시설을 새로 짓고자 하였다.
클라이언트는 청담동이라는 고가의 대지 안에 건축물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짓고, 업무, 교육, 미팅 등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담은 공간에서 전 직원들이 함께 배우고, 즐기고, 경험할 뿐만 아니라 좋은 회사에서 일한다는 자긍심을 나누고자 하였다. 또한 기업의 이미지와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공간과 임원들이 건물에 항상 상주하면서 직원들과 교육을 통해 교류하고 많은 소통을 할 수 있는 공간을 갖기를 원했다.
 
직원들을 위한 교육, 대규모 미팅과 컨퍼런스를 위한 공간인 지하 2층은 지상층의 하중을 받기 위한 깊이 2m의 트랜스퍼 구조 보를 적용하여 내부 전체에 기둥이 없는 큰 공간을 확보함으로써 클라이언트의 목적을 건축물에 적극적으로 반영하였다.
한 방향의 직선계단을 디자인하여 많은 인원이 쉽게 이동할 수 있는 동선으로 계획하였으며, 장뱡향의 긴 코어 자체가 복도가 되어 추후 해당 층 내에서 실을 나누어도 별도의 복도가 필요 없도록 하였다.
또한 공용부의 수직 벽면은 전시장 역할을 하여 자연스럽게 계단과 복도를 이용하면서 직원, 학생들과 방문객들이 준오헤어의 역사를 자연스럽게 살펴볼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1층 주 입구에서 직선계단을 통해 내려갈 때 전면에 보이는 엘리베이터를 투명하게 처리하여 지하층의 선큰 가든이 투시되어 보이게 하였다. 이로써 공간에 깊이를 부여하고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 개방된 시야를 확보하였다. 특히 지하 공간은 선큰을 통해 자연채광과 환기를 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식재를 조성해 지하 공간이지만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지상 1, 2층은 투명한 스틸커튼월로 보행자에게 열려있는 느낌을 주고 1, 2층의 철골 계단은 외부로 형태가 노출되어 오브제의 역할을 하도록 디자인하였다.
지상 3, 4, 7층은 미용 전문 교육 시설로 배치하였고, 지상 5, 6층은 교육의 핵심 역할을 하는 실습장으로 건물의 매스에 변화를 주고 스틸커튼월을 적용하여 상부의 매스가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도록 하였다. 내부를 2개 층이 열린 공간으로 만들어 학생들이 실습하는 공간을 가장 중요한 공간으로 만들어 주었다.
열린 공간의 면적만큼을 옥상 면적에 할애하여 8층을 만들면서, 전면과 후면에 조경을 두었으며, 도심에서 마치 숲에 둘러싸인 느낌의 공간을 만들어 사람들이 오랜 시간 머무르면서 다양한 모임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외관은 대로변의 정리되지 않은 주변 건물들과 차별되는 단순한 형태와 일관된 디자인 어휘로, 입면에 스틸커튼월과 발색 된 스텐레스 스틸 루버를 적용하여 개성과 도시적이며 세련된 존재감을 느끼도록 하였다.
정면의 서향 빛을 가려주기 위해 적용한 전면의 루버는 오랜 시간 다양한 스터디를 통해 과학적이며 디테일하게 디자인하였다. 루버를 길에서 올려다볼 경우에는 조밀하여 차폐의 효과가 있는 동시에 내부에서 외부를 볼 경우에는 사람의 시선 높이를 고려하여 설계된 넓은 간격으로 시야를 가리지 않아 시원한 조망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또한 루버 단면의 형태는 같지만 방향에는 변화를 주어 시간대별로 빛이 바뀜에 따라 건물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변모하는 생명력을 갖도록 하였다.
 
SKM Architects 사진 신경섭, 송재영
 
켄민성진
켄민성진은 남부캘리포니아대학(USC)에서 건축학 학사, 하버드대학교 디자인대학원(GSD)에서 도시디자인학 석사를 취득하고, 1995년 SKM ARCHITECTS를 설립하였다. 한국과 해외에서 규모 있고 주목받는 프로젝트를 완공했으며 최근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건축가 중 한 명이다. 대표작으로는 아난티클럽 서울, 힐튼 남해 골프 & 스파 리조트, 서교 자이 주택문화관, 파주 헤르만하우스, 금강산 아난티 리조트, 라오라오베이 호텔 등 건축계에서 주목받는 실험성과 완성도, 생명력을 모두 충족시키는 다수의 규모 있는 프로젝트를 디자인하였으며, 최근 아난티 펜트하우스 서울에 이어 부산 해변에 아난티 펜트 하우스 해운대, 힐튼 부산이 통합된 대규모 휴양 단지 아난티 코브를 완성시켰다.

 
SKM Architects
http://skma.com

 
위치 서울 강남구 삼성로 710
설계 담당 장석용, 노현규, 문경민, 박종한, 최선걸
감리담당 노현규, 박종한, 최선걸, 부민 종합 건축사 사무소
시공 장학건설㈜
지역지구 도시지역, 준주거지역, 일반미관지구, 지구단위계획구역
주요용도 교육 연구시설, 근린생활시설 및 업무시설
대지면적 494.2 ㎡
건축면적 292.36 ㎡
연면적 2,710.72 ㎡
건폐율 59.16%
용적률 357.72%
규모 지하 3층, 지상 8층
주차 대수 8대
최고 높이 39.65 m
구조 철근콘크리트구조
설비 방식 개별 제어
내부 마감 바닥/ 대리석, 화강석, 타일
벽/ 화강석, 콘크리트블럭, 페인트
천장/ Spreed SUS, Louver
외부 마감 SPRED SUS. , Steel Curtain wall, Stucco
구조 설계 ㈜명아주피닉스
조경 설계 ㈜뜰과숲
기계 설비 ㈜지케이이엔지
전기 설비 ㈜지케이이엔지
인테리어 공용부 인테리어 설계_에스케이엠 건축사사무소 (켄민성진), 5층, 8층 인테리어 설계_에스케이엠건축사사무소 (켄민성진) + 애이아이 아키텍스 (박진/손선기), 지하1,2층, 지상3,4,6,7층 인테리어 설계_애이아이 아키텍스 (박진/손선기), 1층, 2층 전용부 인테리어 설계 → 폴바셋
Map서울 강남구 삼성로 710
건축가켄민성진
설계 담당장석용, 노현규, 문경민, 박종한, 최선걸
건축주준오 헤어
일시2018년 10월 21일 3:00PM
위치서울 강남구 삼성로 710
집합 장소서울 강남구 삼성로 710 준오 아카데미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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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프로페셔널의 성장은 멈추지 않는다, 도시건축가 김진애 ② 대학 입학 당시 공대 800명 중에서 유일한 여학생이셨다고 들었습니다. 3명이었다가 한 명이 되었어요. 그 세 명이 모두 이화여고를 나왔어요. 너무 흥미롭지 않아요? (웃음) 이화여고에는 확실히 항상 ‘야’성이 있는 것 같아요. 기독교적이기도 하지만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있어요. 그 중 숨겨져 있는 게 ‘야’성이에요. ‘뭔가를 바꾸고 싶다’, ‘뭔가 다르게 하고 싶다’라는 것이 항상 있어요. 그 가기 어렵다는 공대 한 기수에 3명이나 되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화여고를 다닌 것은 매우 고마워하죠. 나머지 두 명이 여러 이유로 같이 못 다니게 돼서 혼자 다니는 바람에 많이들 물어보는데, 저는 신경을 써본 적이 없어요. 나중에 같이 들어갔던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당시 상계동 캠퍼스였는데, 입구 들어갈 때 긴 잔디밭을 통과해야 해요. 거기에 맨날 시커먼 남자들이 너댓 명 앉아서 ‘기루다’라는 일종의 브리지 카드 게임을 하고 있어요. 여자가 지나가면 다 같이 쳐다보는 게 친구는 그렇게 싫었다고 하더라고요. 글쎄 나는 싫고 말고 할 게 없었어요. 남이 쳐다보는 것에 대해서 별로 신경을 안 쓰는 편이었어요. 미니스커트도 입고 다니고, 내가 등장해서 분위기 바뀌면 오히려 재밌어하고 그랬죠. 그건 제 체질인가 봐요. 물론 가끔 짜증 나는 것은 있었어요. 가장 짜증 나는 것은 여자 화장실이 없었다는 것. 제가 서울공대 전설이 된 것은 여자 화장실이 없어서 남자 화장실에 들어갔다는 것 때문인데 그건 별 것 아니고요. 지금도 그걸 많이 이야기하더라고요.   화장실 문을 발로 차고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왔죠. 사실이 아니에요. (웃음) 과장이 됐을 수도 있죠. 손잡이가 얼마나 더러우면. (웃음) 손잡이도 제대로 없어서 끈으로 해놓기도 하고 그랬잖아요. 만지기 싫을 정도로 더러워서 그랬을 거예요. 발로 차고 들어갔다니, 나 같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어요. (웃음) 대학 때 연극부를 했는데, 7년 만에 서울 공대에 여자가 들어온 거예요. 역사적 사건이니 무대에 서야 한다고 난리였죠. 그것도 좋겠다 해서 무대에 두 번 올랐어요. 모여서 합숙도 하고, 라면도 끓여 먹고 하잖아요? 냄비가 뜨거워서 스웨터를 잡아당겨 손잡이를 잡고 그랬는데, 남자들이 보기에는 터프한 게 놀랍고 신선했나 봐요. 그 때문에 홀딱 반한 남자들도 많았어요. (웃음) 솔직히 인생을 돌아봤을 때 좋았던 것은, 당시 저는 제가 그렇게 예쁜지 몰랐어요. 나중에 그때 사진을 돌아보니 예쁘고 매력적이더라고요. 중요한 건 그때는 그걸 몰랐다는 사실이에요. 제 언니가 워낙 예쁘고 매력적이어서 저는 외모경쟁은 일찌감치 포기했고 실력 경쟁만 했어요. 그래서 지금의 제가 있는 거예요. (웃음) 그때부터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는 크게 개의치 않았고요. 서울 공대 다니면서 남의 시선에 개의치 않는 것을 배웠던 것 같아요. 항상 몇천 명 무대에 여자 몇 명이었기 때문에 주목의 대상인 것은 확실했어요. 거기서 별로 아무렇지 않아 하는 것, 그거는 괜찮았던 것 같아요. 그러나 대학 생활은 불행했어요. 대학 생활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죠.   당시 대학 다니셨던 분들은 암흑시대나 마찬가지였다는 말을 많이 하세요. 시대적 상황이기도 하고 당시 건축 교육의 수준 때문이기도 하고요. 연애하고 여행하고 놀았던 기억밖에 없어요. 학교가 일 년 중 반은 문을 닫아서, 아예 안 다녔어요. 공대는 심하게 데모하지도 않았어요. 남자들은 선배들에게 불려가서 아르바이트도 했지만, 여자는 시켜주지도 않았어요. 네트워크고 뭐고 그런 거 하고 싶지도 않았고요.   어디에 관심 있으셨나요? 가장 재밌었던 건 도시에 관한 책을 접했던 것이에요. 대학교 2학년이 되자마자 조교 하나가 저를 부르더니 몇 가지를 이야기해줘요. 그림 트레이스를 많이 해봐라, 사진 책 보면 평면을 그려봐라, 영어 원서를 읽으라고 하면서 당장 세 권을 추천해주는 거예요. 그중 하나가 찰스 젠크스가 쓴 <Architecture 2000 and Beyond>라는 유명한 책이었어요. 바로 종로서점 가서 원서를 샀어요. 영어를 전혀 모르는 2학년 학생이 그걸 보느라 정말 혼났어요. (웃음) 당시 선배로부터 받은 조언은 그거 하나만 기억나요. 덕분에 당시 원서를 많이 찾아 읽었어요. 미국문화원에서 도서관을 운영했는데, 학교가 하도 노니까 그곳에 가서 책을 읽었어요. 미국의 1960~70년대가 끓어오르는 혁명 시대였잖아요. 그때 매우 많은 저작들, 특히 도시사회학에 관한 책이 많이 나왔어요. 두 가지 주제에 심취했는데, 도시사회학 분야의 주제와 ‘이상 도시(Ideal City)’에 대한 거예요. 이상 도시에 대한 미국 책은 낱낱이 읽었어요. 제 머리가 일찍 깬 거예요. 반면 건축과를 가자마자 너무 싫었던 것은 건축의 판타지를 불러일으키는 거였어요. 작가가 일필휘지로 그려내거나 하는 판타지가 무척 못마땅했던 거예요. 그런 부분엔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건축과를 잘못 들어왔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래서 도서관에 다니면서 다시 사회학과를 가야 하는 거 아닌가 할 정도로 도시사회학, 문화인류학 책을 많이 읽게 되었고요. 당시에는 학교가 너무 재미없었고, 설계라고는 배운 적이 없어요. 학교가 어떤 지경이었냐면, 어떤 교수는 ‘미국 주택교통부 장관이 여자 출신이다’ 이러더라고요. 요즘 같으면 손들고 뭐든 말했겠지만 당시엔 속으로만 ‘아휴’ 했어요. (웃음) 또 어떤 교수님은 나만 들어가면 ‘여기 앉아요~’하며 먼지까지 털어주시면서 완전히 레이디 취급하는 거예요. 솔직히 저는 서울대에서 배운 게 없어요. 그때는 대학 졸업하면 그저 일하면 되는가 보다 하고 교수님이 소개해 준 설계사무소에 취직했어요. 거기서 처음으로 토시를 끼고 구조설계도를 그리는 걸 배웠어요. 처음 구조설계도를 그릴 때는 정말 신기했어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설계사무실은 어쨌든 일이 돌아가기 때문에 어떻게든 배울 수가 있었죠. 나중에 이광노 교수님이 라멘도 그리는 저를 보고서 ‘어, 이 자식 봐라’ 하더라고요. (웃음) 그곳도 몇 달 후 관두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혹은 선배가 하는 새로운 기획팀에 가서 일도 하고 그랬어요. 그렇게 1년 정도가 지난 후 주변을 돌아보니 동기생 절반이 다 대학원에 들어가 있더라고요. 그때까지 대학원을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정말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는 거죠. 그러다가 다들 대학원에 가 있는 것을 보고, 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교 분위기도 조금 나아져 있어서 1년 사회생활 하다가 가게 되었죠. 대학원 가서는 꽤 알차게 공부했어요. 주종원 교수님(도시설계 전공)을 지도교수로 선택했고 프로젝트도 꽤 했고요. 졸업 후 박정희 대통령 말기 때 KIST에 생긴 신행정수도 팀에 들어가게 됐어요. 설계사무소에서 꽤 재미있게 일하고 있을 때였는데 제가 1977년에 쓴 소셜믹스(social mix)에 대한 논문을 보고 당시 강홍빈 팀장이 전화 걸어서 인터뷰를 했어요. 일종의 스카우트를 한 거죠.
Interview 프로페셔널의 성장은 멈추지 않는다, 도시건축가 김진애 ① 지난 2018년 5월, 김진애 박사를 만났다. 그가 2000년에 설계했던 인사동길에서다. 검은 전벽돌 바닥과 골목을 상징했던 많은 장치는 사라졌고 인사동길의 성격도 달라졌지만, 석물과 간판, 골목길 안의 이야기들은 이제 인사동길의 일부가 되었다. 표구방과 필방 대신 호객을 위한 입간판과 플랜카드가 내걸린 인사동길 사이로, 김진애 박사의 힘 있는 목소리가 흘렀다. 서울대 공대의 유일한 여학생, 도시건축가, 기획자, 편집자이자 발행인, <타임>지 선정 차세대 리더 100인,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에서 국회의원, 그리고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까지, 김진애 박사를 소개하는 수식어는 전문가로서 폭넓은 행보를 보여준다. 도시와 건축 분야의 전문가로서 그가 보여준 연구와 설계, 그리고 전시와 출판도 의미 있지만, 건축기본법과 건축도시공간연구소를 만든 것은 중요한 성과 중 하나다. 국회의원으로서 4대강 곳곳을 누비며 전문가의 역할이 어떻게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성 전문가의 아카이빙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김진애 박사가 던진 방향은 명확했다. 자신의 프로젝트를 강조하기보다 전문가의 역할에 대해 질문하는 것. “전문가의 역할은 왜 필요한가? 또 그런 역할은 어떻게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여러분 앞길에 얼마나 많은 가능성이 있는가?” 건축계의 영웅적 서사와 과잉된 자아를 비판하면서도, 인터뷰 곳곳에는 건축이 외연을 넓혀 더 넓은 세계와 만나길 바라는 바람이 묻어 있었다. 건축과 도시 분야의 프로페셔널을 말했던 ‘자라기 시리즈’는 이제 한 사람이 어떻게 전문가가 되고 성장해 시민이 될 것인가에 대한 답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자신의 토대를 만들고 있는 것은 건축이지만, 세상을 향해 큰 걸음을 걸어온 그의 세상은 도시를 넘어 사회와 전방위로 만난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인사동길에서는 그의 목소리를 알아본 라디오 애청자들, 그의 책을 좋아한 팬들이 악수를 청해왔다. “요즘은 귀엽다는 소리를 들어야 성공을 한 거예요. (웃음)” 전문가의 엄격함은 종종 까칠함처럼 보이지만, 그런 긴장감을 무너뜨리는 김진애 박사의 필살기는 ‘귀여움’이다. 여전히, 지금도 김진애 박사는 인생이 주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는다.
Special 한남동 이기남 주택, 김중업 10월 27일 4:00PM
Special 춘원당, 황두진 *춘원당한방박물관(춘원당한의원 신관 5층)은 전시 기간 중 상시 방문 가능합니다.  개관 10주년 특별전 <춘원당(春園堂) 이야기_평양에서 종로까지>  2018년 9월 17일~12월 31일 개관 시간: 월화수금 9:30-18:00, 목토 9:30-12:30, 일요일 법정공휴일 휴관 공식홈페이지 http://www.cwdmuseum.com/ 오래된 것이 새 것을 잉태하다: 춘원당한의원 신관 나와 우리 사무실 사람들은 거대하고 오래된 도시 서울에서 일하는 건축가들이다. 이것은 우리를 여러가지 도전적인 상황에 놓이게 한다. 오래된 것과의 조우는 필연적이다. 오래된 것 중에는 그냥 낡아서 사라지려는 것이 있는가 하면, 그 안에 새로운 생명의 씨앗을 품고 있는 것도 있다. 다 버릴 수도 없고 다 취할 수도 없다. 동시에 이 도시는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들라고 요구해온다. 이 절박한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는 항상 긴장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만큼 흥미로운 일도 없다. 경기를 하면서 규칙을 알아나가는, 그런 상황과도 같다. 춘원당한의원이 위치한 서울 종로구 돈의동과 낙원동 일대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창자가 꼬이고 얽혀있는 곳이다. 공사용 차량이 진입할 수 없는 절대폭 미만의 도로들, 남녀 혹은 남남이 드나드는 모텔들, 한 그릇에 불과 2-3천원 남짓한 냉면을 파는 싸구려 음식점들, 그리고 한 때 종삼으로 불렸던 쇠락한 윤락가의 자취 이 이 지역을 구성한다. 종로에서 이 지역으로 들어오는 순간, 시계가 갑자기 이삼십년 전으로 돌아가는 듯 하다. 서울 느와르(Seoul Noir)의 배경이 되고도 남을 지역이다. 이 지역의 역사는 깊다. 동으로는 종묘의 담장이 버티고 서 있고 서로는 파고다 공원이다. 창덕궁 돈화문에서 남쪽을 향해 나 있는 큰 길, 즉 돈화문로의 바로 옆이기도 하다. 그러니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의 하나인 셈이다. 춘원당한의원이 이 지역에 자리 잡은 것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이었다. 1847년 평북 박천에서 시작되어 7대째 내려오고 있는 이 유서 깊은 한의원은 ‘서울 구도심을 지킨다’는 의식을 강하게 갖고 있었다. 주변 상황이 아무리 열악해져도 이 자리를 떠날 수 없다고 했다. 새로 지어지는 춘원당한의원 신관이 이 지역의 미래가치를 담았으면 한다는 희망 또한 이야기했다. 주변의 폐쇄적인 건물들과 대비되는, 투명하고 개방적인 건물이라는 개념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정식 명칭이 ‘춘원당한의원박물관’인 신관은 그 이름처럼 복합적인 건물로서 계획되었다. 이것은 한의학의 정기신론(精氣神論)과 연관성을 갖고 있다. 즉 환자를 진찰하고 치료하며 약을 달이는 공간이 사람 몸의 정(精)을 다스리는 것이라면, 공연, 강의 및 전시 등 다양한 행사를 경험할 수 있는 지하의 문화공간은 기(氣)를 키워주고, 춘원당의 역사 및 한방의학의 유물들을 관람할 수 있는 박물관은 신(神)을 고양하기 위한 공간에 해당한다.  2017년에는 5층 정면 테라스 부분에 전시장이 증축되었다. 이 모든 시설은 환자를 포함한 방문객들에게 공개되며, 건물 내의 각 부분에 혼재되어 분포한다. 각 시설로의 접근은 다양한 경로로 이루어진다. 건물 정면의 완만한 계단은 2층의 진료 대기실로 연결되며 몸이 불편한 환자들을 위해서 2층까지만 운행되는 엘리베이터를 따로 설치하였다. 자동차를 이용하는 내방객은 주차장에서 바로 연결되는 또 다른 엘리베이터와 주계단을 통해 건물의 각 부분으로 접근할 수 있다. 지하의 문화공간은 별도의 외부계단을 통해서도 연결되어 건물의 나머지 부분과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이밖에도 후면도로를 이용하여 배달차량이 드나드는 등 건물은 주변 지역과 다양한 접점을 통해 연결된다. 재료적인 측면에서 춘원당한의원 신관은 역시 한방의 기본정신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가급적 페인트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처음부터 있었다. 건물의 내외부는 현무암과 송판널 노출 콘크리트, 목재, 그리고 유리로 마감되었고 금속은 무광 스테인레스와 아연도금마감으로 처리했다. 즉 재료의 성질을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을 통해 천연재료로 약을 짓는 한방의 기본 정신을 건축에 담고자 한 것이다.  설계과정의 초반에는 한의원의 운영체계를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기존 본관 3층의 탕전실(약 달이는 방)에 처음 들어섰을 때의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 시설을 신관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는 진료실이 확장될 예정이었다. 그것은 기계적이면서도 동시에 성스러운 공간이었다. 구도심이라는 도시의 뱃속에 자리 잡은 창자였다. 춘원당한의원은 이 시설의 발명특허까지 갖고 있었다. 처음으로 그린 스케치에서부터 이 탕전실은 신관의 설계를 풀어가는 핵심적인 공간이었다. 마침 북향 대지여서 직사일광으로 인한 문제가 크지 않았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 놓이는 것을 전제로 설계되었던 기존의 탕전기를 시각적으로 노출시키기 위해서는 수 많은 기술적 협의와 시각적 조율을 필요로 했다. 우리는 이 기계를 통해 어떤 시적인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건물 안에서 약을 준비하고 달이는 과정이 거리 풍경의 일부로서 드러나는 새로운 개념의 한의원이 탄생하게 되었다. 춘원당한의원 신관은 우리가 그 동안 꾸준히 해 오고 있는 일련의 서울 구도심 프로젝트 중에서 가장 크고, 가장 복잡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무거운 작업이다. 구도심이라는 콘텍스트, 그리고 유서 깊은 한의원이라는 기능이 더해져 ‘오래된 것이 새 것을 잉태한다’라는 건축가로서 우리의 믿음을 실천할수 있는 기회였다. 사이트(site)와 프로그램(program)은 건축창작의 영원한 두 대척점이다. 양뱡향으로부터 같은 주제를 통해 접근할 수 있었던 이 흔치 않은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졌던 것에 감사한다.  글 황두진  사진 박영채 황두진건축사사무소 www.djharch.com 황두진 건축가 황두진은 서울대와 예일대에서 수학했다. 그는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 현대건축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 건축가로 평가받고 있다. 한옥을 현대건축의 시각에서 재해석하는 일련의 작업을 해오고 있기도 하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하여 유럽을 순회한 <메가시티 네트워크 한국현대 건축전>에 참여했고 동 전시회의 전시디자인을 맡아 새로운 개념의 건축 전시를 보여준 바 있다. 주요 작업으로 Won & Won 63.5,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 스웨덴 동아시아박물관 한국관, 춘원당, 엘주택, 휘닉스 스프링스, 가회헌, 한강교량보행자시설(한남, 잠실, 동작), 갤러리 아트사이드, 웨스트빌리지, 열린책들 등이 있다.  저서로는 <가장 도시적인 삶-무지개떡 건축 탐사 프로젝트>(반비, 2017), <황두진-다공성·구축술·시스템>(열린집, 2016), <무지개떡 건축-회색 도시의 미래>(메디치미디어, 2015),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해냄, 2005), <한옥이 돌아왔다>(공간사, 2006) 등이 있다. 대한민국 한옥공모전 올해의 한옥 대상(목경헌, 2016), 서울특별시건축상 우수상(원앤원 63.5, 2015), 대한민국공공디자인대상 대상(통인시장 아트게이트, 2012), 서울특별시건축상 우수상(더 웨스트 빌리지, 2012), 대한민국 한옥공모전 올해의 한옥 대상(엘주택, 2011),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문화유산상 공동수상 (북촌 한옥, 2009),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집운헌, 2009), 한국건축가협회 아천상(가회헌, 2007) 등을 수상한 바 있다.   건축 춘원당한의원박물관 설계 담당 김수현, 임하정, 박의진 위치 서울시 종로구 낙원동 153-1외 6필지 지역 지구 일반상업지역, 지구단위계획구역 주요 용도 문화 및 집회시설 및 제1종근린생활시설(한의원 및 한방박물관) 대지면적 626.58 ㎡ 건축면적 373.74 ㎡ 연면적 1882.52 ㎡ 건폐율 59.65% 용적률 232.28% 규모 지상6층/지하1층 주차대수 10대 구조방식 철근콘크리트조 내부 마감 송판널노출콘크리트, 무늬목, 투명에폭시도장, 원목마루, 타일 외부 마감 현무암, 복층유리, 적삼목 구조설계 단구조 기계설비 보우기술공사 전기설비 신한전설 시공 장학건설(건축)+장학디자인(인테리어) 설계 기간 2007. 1~2007. 5 시공 기간 2007. 4~2008. 9 건축주 윤영석 탕전기설계 및 제작 청산 ENG 박물관 자문 쇳대박물관 박물관 전시대 제작 최가철물점 일반가구제작 모티브 사인 및 그래픽 투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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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House 준오 아카데미, 켄민성진 10월 21일 3:00PM
OpenHouse 부암동 하우스, 최두남 10월 21일 3:00PM
Special 아트사이드 갤러리, 황두진 10월 21일 2:30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