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HOUSE

한남화원

유진상(스튜디오유진상)

2024년 10월 30일 3:00PM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55가길 21
참가비 10,000원
사진_신경섭
사진_신경섭

꽃잎 같은 기둥을 품은 한남화원
한남화원은 리움이 건너다 보이는 한남동 739-18 대지에 들어선 지하 3층, 지상 6층의 근린생활시설이다. 그 이름은 건축주가 건물 내부의 기둥들이 거리에서 보면 꽃잎처럼 보인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다.

거리에 열린 건물
한남동의 이 거리에서 쉼을 얻으려면 커피라도 한잔할 여유가 있어야 한다. 뭔가 소비를 하지 않으면서 쉴 수 있는 곳은 차량들이 피해 가는 전봇대 옆이나 거리 끝자락의 오래된 주택 문 앞 계단 정도이다. 널찍한 곳은 모두 차를 위한 곳이다. 
새로 지어질 건물에 연남동 숲길처럼 사람들이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건축물 정면의 거리에서 양방으로 차량이 교차하면 사람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지 앞의 공간에 가상의 큰 공원이 있어 건물은 그 공원 모서리를 품고 지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건물은 두 구조물이 직각으로 맞닿으며 생긴 삼각형 공간을 품은 형태가 되었다. 삼각형 공간의 반은 주차장으로, 반은 지하 중정으로 나뉘고 그 경계와 거리 쪽으로 벤치를 놓아 지나가는 사람들이 잠시 앉아 쉴 수 있도록 했다. 건물 완공 후 가끔 건물 앞을 지나면, 거기 앉아 졸거나, 담소하거나, 책 읽는 사람들을 볼 수 있어 좋았다.    

햇빛이 드는 라운지 
대지는 북서쪽을 향해 오후에는 제법 햇빛을 오래 받고 있었다. 더구나 건물의 반은 서쪽을 향하게 되어 햇빛을 제어할 방법이 필요했다. 그리고 거리에서 사람들이 전면의 삼각형 공간을 건물 내부의 라운지로 삼아 천천히 건물로 진입하게 만듦으로써 건물이 작지 않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건물 전면에 루버 역할을 하는 선스크린을 설치한다면 이 두 가지 요구를 충족할 것 같았다. 
난제는 초반에 수직으로 내려온 선스크린 입면이었다. 스크린이 거리와 건물의 연결을 차단하며 오히려 사람들을 들어오기 어렵게 만들 수도 있겠다 싶었다. 선스크린을 제거할 것도 고려했지만 결국 선스크린을 천 장막이 바람에 건물 안쪽으로 부풀어 들어간 모양으로 정리함으로써 해결점을 찾았다. 또한 부드럽게 안으로 밀려 들어간 선스크린 덕분에 건물의 정면이 사람을 품는 듯한 공간감을 가지게 되었다. 

바로 사용 가능한 공간
프로그램이 사라진 건물은 상상을 하게 만든다. 성수동의 대림창고나 어니언 카페처럼 공장이나 창고였던 장소에서 커피를 마시며 느낄 수 있는 감각과 유사하다. 그런 건물은 완전히 빈 공간보다 인테리어에 고민이 적어 보인다. 지난 세월의 흔적들이 공간에 남아 있는 이유일 거라고 생각했다. 
임차인들은 계약 후 임대 공간을 어떻게 자신의 목적에 맞는 공간으로 바꿀 것인가 고민한다. 나는 이 고민의 언덕을 조금이나마 낮추고 싶었다. 신축이지만 오래전에 지어진 창고나 공장처럼 공간에 지난 흔적들이 남아 있다면, 그것들을 고쳐서 쓰거나, 가구만을 놓고 바로 사용이 가능한 공간이 될 듯했다. 
1925년에서 1931년도 사이에 지어진 로테르담의 커피와 담배 공장이었던 판넬레 공장(Van Nelle Factory)의 사진들을 우연히 지인의 SNS에서 볼 수가 있었다. 팔각형 버섯 기둥들이 공간에서 구조와 인테리어의 역할을 하면서 만들어낸 공간이 인상적이었다. 이 기둥을 신축 건물에 도입해 보기로 했다.  
‘신축 공간을 미리 인테리어적으로 만들어서 내놓는다’는 것의 고민은 설계자가 어디까지 관여해도 되는가에 있었다. 너무 구체적인 디자인을 해 놓으면 사용자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것 같고, 너무 일반적이면 디자인을 한 의미가 사라지는 그런 경계선이 존재했다. 
나는 신축공간 내의 팔각기둥과 노출콘크리트 벽면이 설계자와 아직 공간을 접하지 않은 사용자 상상력의 경계선에 있으리라 믿고 설계를 진행했다. 팔각기둥을 위로 약간 더 부풀려 공간을 지배하도록 하고, 벽면을 위아래로 나누어 각기 다른 노출로 마감하고 사이에 조명을 설치했다. 에어컨 설치 위치와 스프링클러, 그리고 전기와 기타 설비들도 공간을 바로 사용할 경우를 대비해 배치했다. 
건물이 완공되기 약 10개월 전쯤 1층 임차인을 현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1층 기둥이 궁금해서 거푸집을 뜯자마자 영국에서 보러 오신 것이었다. 공간이 오래된 교회를 사용하는 숍 같다고 말씀하셨다. 
‘계약 후 바로 사용가능한 공간’ 설계 전략은 완공 전 80% 임대 계약으로 그 유효성을 어느 정도 증명해 냈다고 보여진다. 

스튜디오유진상 사진 신경섭


스튜디오유진상
groundsamuso.com

유진상
유진상은 스튜디오유진상(구 건축사사무소그라운드) 대표 소장이다.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동 대학원 도시설계, 한국전통건축을 수학했다. 삼우설계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 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건축 & 도시 디자인 과정을 수료했다. 에머슨퍼시픽 리조트(현 아난티) 건축이사이자 마스터플래너로 역할 한 바 있다. 대표작으로는 웅진플레이도시 마스터플랜, 2030 목포 해안선 주변개발 마스터플랜, 목포 유달만호동 오거리 일원 활성화 마스터플랜, 한남화원, 한남그라운드, Jubilee church, Haiti Chapel, Haiti 기술학교 등이 있다. 

Map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55가길 21
건축가유진상(스튜디오유진상)
일시2024년 10월 30일 3:00PM
위치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55가길 21
집합 장소건물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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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IT YOURSELF 경리계단길, 류인근, 김도란, 정상경(요앞 건축사사무소) 고립된 경사지의 자생적 지속가능성 차가 닿지 않는 좁은 골목길에 위치한 땅, 경사지에 있는 땅, 인접한 건물이 경계를 침범해 있는 땅, 폭이 좁고 면적이 작으며 일조량이 적은 땅. 경리계단길의 대지는 이 모든 악조건을 가진 땅이었다. 이러한 난제 속에 ‘길’의 의미에 집중해서 건축물의 가치를 끌어올리고자 했다. 이태원의 골목길 대지의 위치는 경리단 골목길, 그중에서도 윗동네로 골목의 계단을 한참 올라가면 남산과 동네가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동네 사람들이 위태위태하게 다니던 길과 옹벽, 그리고 계단이 있다. 우리가 설계한 계단은 고립된 경사지와 기존 동네의 모호한 경계를 이어주며, 지붕과 골목의 연장이 되기도 하며 계단의 관습적 정의를 넘어선다. 하지만 다양성이 존재하는 이태원의 흔한 계단 골목길에도 법규는 적용된다. 「건축법」에서 도로는 ‘보행과 자동차 통행이 가능한 너비 4m 이상의 도로’로 정의되며 대지는 도로에 2m 이상 접해야 한다. 도시와 건축물을 ‘사람’이 살아가는 바탕으로 보기보다 효율적인 차량 통행을 위한 기능적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서울의 오래된 경사지에서 살아온 주민들도 새로운 건축을 시도하기보다 대부분 ‘대규모 재개발’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우리는 이러한 고립된 경사대지가 지속 가능하게 남아있을 수 있는 자생적인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도시의 계단이 건축의 계단으로 처음 대지에 갔을 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대지인지 확인하기도 어려웠고, 도로와 단차가 있어서 윗길에서는 보이지도 않았다. 지적상 도로는 끊어져 있지만 경리단길의 동네 사람들은 우리 대지의 아슬아슬한 계단으로 통행하고 있었다. 기존 길은 오랫동안 주민들이 이용하고 있는 현황도로로 인정하고, 길의 중심에서 2m씩 밀어 4m를 확보해야 했다. 토지대장상 면적 100㎡에서 옆집으로, 도로로, 가각전제로(사실 가각전제의 법 취지는 차량 통행을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30평 땅에 10평 남짓을 계단길로 내주고 나서 20평의 땅에 설계를 시작했다. 면적은 줄었지만 더더욱 ‘길’이 가진 가치에 집중했고 그것이 건축의 모든 해결책으로 작용했다. 1층은 아랫길에서 진입하거나 윗길에서 한층 내려가 들어가고, 윗길에서는 바로 2층으로 연결되고 3층으로 올라가는 길이 열린다. 이곳은 삼거리 골목이었는데 이제 사거리가 되었다. 3층과 4층은 풍경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올라가고 4층에서는 남산의 풍경이 열리기 시작한다. 5층부터는 계단이 방향이 바뀌며, 아랫길 더 먼 곳에서 길의 지층을 느낄 수 있도록 계단이 단면 방향으로 바뀐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건물임에도 외부계단은 심리적으로 더 낮게 느끼는 경향이 있어 층수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경리단길에서 이어진 도시의 골목 계단길은 건축의 계단길로 변화하며 길의 경계는 흐릿해진다. 이 경계는 어느 곳에서나 점차적이며 계단이 가지는 다양한 층위로 도시를 만난다. 민간건축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계단의 변주가 곧 건축의 입면에서 도시의 입면으로 확장된다. 외피의 두 얼굴 경리계단길의 외피는 거칠다. 예전 도시의 골목길 담장들도 거친 질감이 많다. 담장의 거친 질감을 대지 내로 끌어 쓰고 그 거친 질감의 콘크리트를 파헤며 길을 내고 싶었다. 마치 장소의 부산물인 양, 지역성의 현재처럼 자연스러운 두 개의 질감을 대치시켰다. 기술적으로는 좁은 길에서 가설공사를 하기도 어려웠고, 외줄 비계를 설치할 수밖에 없어 외벽에 디테일한 작업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경리계단길에는 거푸집만으로 패턴 작업을 할 수 있는 패턴 콘크리트를 써서 작업의 공정도 줄이고 안정성 또한 확보했다. 건물계단길 측면에는 테라코타 타일을 붙였다. 손에 닿는 곳은 조금 더 소프트한 느낌의 재료를 사용하고 싶었고, 만져도 괜찮고 청소도 용이한 자재를 찾았다. 테라코타 타일은 벽과 바닥에 같은 색상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게 생산되는 몇 안 되는 재료 중 하나다. 게다가 타일을 붙이는 면에서는 계단길로 한 칸 물러나서 길 공간을 이용해 쌍줄 비계를 설치하고 붙임공정을 진행할 수 있었다. 구축과 재료 사용의 논리가 일치하는 순간이었다. 동등한 창의 비례 경리계단길의 긴 세로 창은 정사각형의 창과 대비된다. 멀리서부터 보이는 계단길 쪽 입면에는 폭이 좁고 긴 창을, 차가 다니는 윗길과 만나는 입면에는 가로가 넓은 창을 구성해 길을 지나는 차량과 사람들을 마주한다. 세로로 길게 반복되는 창은 협소한 건물 내부에 기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남산과 경리단의 풍경을 들여온다. 건물 외부의 풍경이 내부와 긴밀하게 연결되며 공간이 연속되었으면 했다. 길가에 있는 여느 상점들처럼 외부의 풍경을 공유하며 협소한 내부를 극복하길 바랐다. 시공의 두려움 속 의외의 즐거움 협소하고 차가 닿지 않는 곳이라 공사계획을 세우며 견적을 내는 과정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가장 필요한 두 가지는 장비차량 위치를 정하고, 자재를 적재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윗길에서 누구의 것도 아닌 자투리땅을 발견하고 차량을 임시로 주차할 수 있는 크지 않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대형장비는 아니지만 소소하게 장비를 들고 옮길 정도는 되는 공간이 운 좋게 하나씩 확보되면서 공사는 천천히 진행되기 시작했다. 상상 속에서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막상 지어지는 걸 눈으로 보니 작업자들도 수월하게 현장을 오기 시작하면서 시공의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어려운 땅일수록 구축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 평범한 땅보다 훨씬 더 소중하다. 디테일과 구축, 한계와 실험에 대한 생각이 명료한 덩어리와 물성으로 도시에 확고하게 존재하는 것을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현장의 작업자들과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지어낸 경리계단길은 따뜻하지만 낯설다. 이 결과물 앞에서 예상보다 많은 도시적, 건축적, 기술적인 질문을 계속할 수 있게 된 것 또한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다. 예전 우리 도시의 건축물들은 숫자보다는 ‘골목 끝집’이나, ‘계단 위 붉은 대문집’처럼 그 특징적 모습으로 불렸다. 요즘의 주소나 층수, 호수 등에서 편리하게 쓰이는 숫자는 경리계단길 건물에서 난독을 불러온다. 이곳이 오래된 동네의 ‘계단 위 테라스 앞집’이나 ‘윗 계단길에서 내려오면 처음 보이는 가게’처럼 풍경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계단은 끊임없는 탐구 대상이다. 사유와 공유 사이의 모호한 경계에서 우연한 만남을 촉발하며 도시로 뻗어나가는 파사드다. 경리계단길이 골목과 함께 천천히 오래오래 나이 들어가기를 바란다. 글 요앞 건축사사무소 사진 류인근 요앞 건축사사무소 yoap.kr